한국의 새/멧새과 나무발발이과

검은머리촉새의 슬픈이야기

박흥식 2021. 6. 7. 07:51

검은머리촉새는 한때 구북구(열대 동남아시아와 북극 지방을 제외한 유라시아 대륙, 사하라 사막 이북의 아프리카를 포함하는 생물 지리학상의 한 구역)에서 개체 수가 가장 많은 명금류 중 하나였으나 1980~2013년에 84.3~94.75%가 사라졌다. 축소된 서식 범위는 5000km에 달한다.

 

2009년 이후 핀란드에서 번식한 개체는 없었고, 2000~2012년 유럽 러시아에서는 개체 수가 95~99퍼센트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일본, 몽골에서도 심각하게 감소했으며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거의 사라졌다.

 

유럽에서는 2004년 번식 가능한 개체가 2만~10만 쌍으로 추정됐지만 현재 성숙한 개체는 120~600마리에 불과하다. 2017년 국제자연보존연맹은 검은머리촉새를 멸종 위급 단계로 지정했다.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이러한 급격한 감소는 북미의 여행비둘기 멸종 사례를 제외하고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가장 큰 원인은 월동지로 가는 중간 기착지인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불법적인 대규모 사냥이다. 과거에는 중국 남부 소규모 지역에서 안개 그물로 포획돼 식용으로 판매됐으나 점차 광범위한 지역으로 사냥이 확산됐다. 지역 연례 음식 축제를 위해 수천 마리를 잡아들이는 관행이 1997년 금지됐다. 단속이 강화돼 적발된 밀렵꾼은 체포되고 벌금이 부과되지만 불법 포획과 판매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싼쑤이 지역 단일 시장에서 판매되는 검은머리촉새는 매일 1만여 마리에 이른다. 중국에는 검은머리촉새 수컷을 집에 두면 복이 온다는 믿음이 퍼져 있어 수천 마리가 박제되고 마스코트로 판매된다. 중국과 캄보디아에서는 진미로 여겨지며 네팔 레스토랑의 메뉴에도 올라가 있다.

 

서식지 상실과 파괴도 심각하다. 대규모 농경지 개발과 관개 농업으로 겨울철 그루터기 및 갈대밭이 손실되면서 서식지 상황이 악화됐다. 네팔에서는 1980년대 이후 급격히 사용이 증가한 살충제 때문에 피해가 컸다. 상류댐 건설 이후 변화된 강의 흐름과 초원의 건조화도 문제다.

 

기후변화는 검은머리촉새와 같은 철새들의 삶을 위협한다. 일찍 찾아오는 따뜻한 봄에 애벌레와 곤충의 활동도 빨리 시작된다. 그에 비해 새들은 너무 늦게 도착하고 새끼들은 굶주림으로 죽는다. 기후변화로 인해 철새의 이동거리도 늘어난다. 2018년 유럽에서 번식하는 새 77종의 이동거리를 추정하고 컴퓨터 모델을 적용한 연구 결과, 2070년까지 여름 번식지가 대부분 북쪽으로 약 415km씩 이동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철새들은 먹이와 은신처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 상태로 더 멀리 더 오래 위험한 비행을 해야 한다.

 

철새를 위한 풍경이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다. 서식지에 살충제가 뿌려지고 건물과 도로가 들어선다. 겨울을 나기 위한 장거리 여행 중에 머물다 갈 안전한 장소가 없다. 하늘에서도 더는 자유롭지 않다. 밤새 빛나는 인공조명 탓에 별과 자기장의 신호를 잃고 헤매다 에너지를 소진한다. 우리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작은 생명이 무수히 죽어간다. 아마도 하늘의 별보다 많을 것이다.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기는 우리도 철새와 마찬가지다. 더불어 잘 머물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한겨레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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